안녕하세요.
요즘 둘째 아이 케어하는게 좀 힘이 들어 다시 육아서나 이런저런 책들 좀 볼까 하고 도서관 기웃거리다가 '오은영의 화해'라는 책을 빌려왔어요.
오은영 박사님 책은 몇개 읽어보긴 했는데 이 책은 있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읽어보진 않았었는데, 이번엔 왠지 읽고싶어지더라구요..
오은영의 화해
여러 상담 사연을 예시로 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저랑 해당되는 것도 있고, 아닌것도 있고..
조금 생각해보기도 하고, 위로받기도 하고 했던 책이었어요.
여러 사연을 짧게 짧게 엮어서 관련된 이야기들 해주셔서 짧은 시간 잠깐씩 읽기도 좋았어요.
책 내용 중에서...
부모가 주고 싶어 하는 사랑이 모든 아이에게 사랑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에요. 부모들이 '아이에게 무엇을 해 줄까?'보다는 '이 아이가 부모인 나에게 무엇을 원할까?', '아이는 내게 어떤 말을 듣길 원할까?'라는 생각을 하길 바랍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만지면 뜨겁고 손대면 고통스러운 '핵심 갈등'이 있어요. 사람들은 타인의 핵심 갈등을 잘 발견하지 못합니다. 발견한다고 해도 모른 척하고 넘어가지요. 유독 아이들은 부모의 핵심 갈등을 잘 찾아내고 또 자주 건드립니다. 아이가 부모의 핵심 갈등을 찌르고 상처를 주는 것은 사실 부코와 자식 관계에서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오해는 하지 마세요. 아이는 목적을 가지고 부모의 핵심 갈등을 찌르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온전히 수용받기를 원하는 것은 자식밖에 없습니다. 자식은 자기의 부정적 감정이나 긍정적 감정 모두를 수용받고자 하는데, 그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부모의 핵심 갈등을 건드리게 된 거예요.
그런데 자식은 부모가 좀 편안하다고 느껴야 그런 표현마저도 할 수 있는 겁니다. 부모를 극도록 어려워하고 두려워하기만 하는 아이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아이가 부정적인 마음을 엄마에게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건, 그래도 부모가 아이를 잘 키우고 있다는 증거예요. 아이가 부모에게 빈정대고 대드는 것은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겪는 자연스러운 진통들입니다.
아이가 참 내 마음대로 안된다는 생각
자녀 문제로 저를 찾아오는 부모에게 많이 듣는 말이 있어요. "원장님, 우리 아이는 왜 이렇죠?" 다른 집 아이들은 무난하게 잘 크는 것 같은데, 우리 아이는 유난히 키우기가 힘겹다는 것입니다. 말도 너무 안 듣고 못 하는 것도 너무 많다고요. 어떤 방법을 써도 우리 아이에게는 통하지 않고, 뭐든 너무 더디고 어려워한다고도 하지요.
이럴 때 제가 해 주는 첫 말은 "다른 집 애들도 다 그래요"입니다. 앞서 말했지만 말 안 듣는 것은 아이들의 정체성이거든요. 못하는 것도 그래요. 아이들은 배운 것이 많지 않으니 당연히 못하는 것도 많습니다. 유독 내 아이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내가 내 아이만 보고 있어서예요. 다른 집 아읻르은 잠깐씩 봐요. 내 아이는 나만 아는 것이 무척 많고요. 그중 아이가 못하는 것들이나 어수룩한 행동들이 잠깐씩 보는 다른 집 아이들과 비교되면서 걱정되는 것이지요. 사실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다른 집 아이도 자기 부모 앞에서는 내 아이와 비슷할 겁니다. 말도 잘 안 듣고 못 하는 것도 많을 겁니다.
만약 누가 보아도 아이가 심하게 말을 안 듣고 문제 행동이 심하고 생활연령에 비해 발달이 많이 떨어진다면, 그것은 한숨만 쉬고 있을 문제가 아니지요. 전문가를 찾아가서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빨리 의논해야 합니다. 전문가를 찾아가 봤더니 "괜찮다"고 해요. 그런데도 내 아이의 부족한 면이 자꾸 눈에 띈다면 그때는 '나에게 통제적인 면이 있나'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통제적인 사람일수록 상대의 미숙한 면이 잘 보여요. 통제적인 사람은 대부분 좀 불안합니다. 불안은 강박적이고 완벽주의적인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백가지 중에 아흔 가지를 잘해도 못하는 열가지가 더 눈에 보여요. 유독 내 아이의 부족한 면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입니다.
부모가 아이를 바라볼 때 '내 생각에 너는 이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그것밖에 못하니?', '넌 왜 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계속 그걸 하니?', '이렇게 정성을 대해 키웠는데 왜 이 정도도 못 따라와 주니?', '이만큼 노력하고, 이만큼 사랑을 퍼부었으면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니니?' 등의 생각들이 너무 강하게 든다면 부모 자신에게 통제적인 면이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우리 애는 감기에 자주 걸려요. 그래서 외출해서 돌아오면 손부터 씻으라고 마르고 닳도록 말하는데 그걸 왜 안하는지 모르겠어요." "밤새 공부해서 일등을 하라는 게 아니에요. 책 다 사 주고, 학원도 보내 주고, 놀이공원도 데려 가고, 해달라는 거 다 해 주는데 왜 공부를 못 할까요?" "전 정말 아이한테 욕심 없어요. 그저 코 좀 잘 닦았으면 좋겠어요. 만날 안 닦고 콧물을 질질 흘리고 다녀요. 왜 말을 안 듣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것들도 사실 모두 통제적인 것입니다. 물론 다 맞는 말이에요. 손 씻으라는 것도, 코 닦으라는 것도 부모로서 할 수 있는 말이지요. 그러나 아이가 그 말을 듣지 않아 미칠 것 같다면 그것은 지나친 것입니다. 도덕적인 절대 가치, 사회적인 규칙 등은 반드시 따르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생활적인 것들은 계속 잘 가르쳐 줄 뿐 아무리 부모라도 완벽하게 내 마음대로 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거예요. 이해시키고, 아이 스스로 깨닫게 되기까지 기다릴 뿐입니다.
"아이가 내 마음대로 안 돼서 힘들어요." 이런 엄마들에게 저는 묻습니다. "아이들은 원래 그래요. 엄마는 자신의 마음을 마음대로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나요?" 대부분 못한다고 대답하지요. 그러면 이렇게 말해 줍니다. "내 마음도 마음먹은 대로 못 하는데 남의 마음을 어떻게 내 마음대로 하겠어요." 자식도 탯줄이 끊기는 순간 '남'이에요. 생판 모르는 '남'이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닌 '남'이라는 의미입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은 과도한 통제예요. 자기 자신에 대한 통제는 국가와 사회가 평화롭게 유지되는 데 너무나 중요해요. 가정도 작은 사회라 적당한 통제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과도한 통제는 부모와 아이 관계, 아이의 건강한 정서 발달을 해칠 수 있어요.
오랫동안 우리 문화에서는 나에게 의미 있는 사람을 통제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잘못 생각해 왔어요. 그러서 우리 스스로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에 상당히 통제적인 면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연인 사이, 부부 사이, 부모와 자녀 사이 등에서 상대를 과도하게 통제하면서도 그것이 이 사람을 특별히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오해해요. 혹여 상대가 상처받더라도 쉽게 용서받을 거라고 여기죠. 하지만 과도한 통제는 사랑이 아닙니다. 상대에 대한 과도한 통제는 상대가 아니라 나를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상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아이의 행동에 정말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면, 통제가 아니라 아이와 같은 팀이 되어 해결하려고 해야 합니다. 일곱 살 된 아이가 손가락을 심하게 빨아서 갈라지고 피가 날 정도예요. 이럴 때 "너, 손가락 빨지 말라고 했지! 다시 한 번 빨면 그땐 정말 혼날 줄 알아!"라고 하면 아이의 문제 행동을 가운데 두고 아이와 맞서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결 구도가 되면, 아이는 설사 그 대상이 부모라 하더라도 누군가와 맞서 있는 상황이라 지고 싶지 않아져요. 의도를 가지고 하는게 아니라 본능적으로료. 그래서 순순히 부모의 말을 따르기가 쉽지 않아요. 아이의 문제 행동은 아이와 맞서서는 고치기 힘듭니다. 부모와 아이가 서로 협조하는 관계, 한 팀이 되어야 조금 더 수월하게 고칠 수 있습니다.
고쳐야 할 문제 행동이 있다면 첫째, 아이의 마음을 공감해 주세요. "OO야, 지금 손가락도 갈라지고 피도 나는구나. 많이 아프겠네. 분명 너도 그러고 싶지 않을 거야. 그래도 네 마음대로 잘 안 되지? 어떤 때는 아프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할 거야." 둘째, 이 문제를 수면 위로 올립니다. "그런데도 계속 이렇게 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는 문제다. 계속하면 안 되겠네. 그건 너도 알지?"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의 아이가 인정하고 동의해요. 셋째, 아이가 문제 행동을 해결하는 과정의 주인공이 되게 합니다. "자, 이것은 분명히 고쳐야 할 문제인데, 너는 어떻게 해 볼래? 네 의견을 들어 보고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엄마가 도와줄게." 이렇게 하면 아이는 문제 행동을 해결하는 과정의 중심에 서게 되고 부모는 돕는 형태가 되지요. 아이는 자신이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을 이끌어 나가는 주인공이라고 생각해 위협감을 느끼지 않고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면 아이는 상당히 자부심을 느끼고 뿌듯해합니다.
부모와 아이가 문제 행동을 고쳐 나가는 데 한 팀이 되면, 비록 단번에 손가락 빨기를 중단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아이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가장 큰 것이 어떤 문제가 있을 때 부모와 힘을 합해서 같이 해결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부모가 나와 함께 노력하고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또 문제 해결 과정의 주인공이 자신이기 때문에 이를 통해 자기 행동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는 책임감도 배울 수 있어요. 무엇보다 아이는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꺼리지 않게 되고, 부모의 도움이나 조언도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부모가 돕고 아이가 적극적으로 고치려고 노력해도 어떤 행동이 습관처럼 되어 버리면 쉽게 고쳐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부모 못지않게 아이도 실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오히려 부모가 위로해야 합니다. 사람마다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다 다르듯 사람마다 맞는 방법도 다를 수 있다고 조언해 주어야 해요. 한 가지 방법으로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는 또 다른 방법을 적용해 볼 수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격려해 주세요. 이때 필요한 것이 부모의 인내심입니다. 인내함녀서 아이에게 설명해 주고, 참고 기다리며, 다음 날 또 노력하게 만드는 과정을 아이와 같은 편에서 끊임없이 반복해야 합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강요하거나 강제로 못 하게 할 수 없어요. 자식이라도 마찬가지 입니다. 아무리 못 하게 한다고 해도 아이의 문제 행동은 하루아침에 고쳐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에요. 이를 마음 깊이 깨닫는 것만으로도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많은 좌절과 실망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예요.
아이가 내 말을 잘 들을 거라는 전제 자체가 육아를 힘들게 합니다. 매일매일 말 안 듣는 아이 앞에서 그럼 어떻게 할까요? 답은 하나입니다. 그냥 새날이 밝았다고 생각하세요. 우리는 어제 세수하고 오늘 또 세수해요. 새날이 밝았으니까요. 우리는 어제 양치하고 오늘 또 양치합니다. 새날이 밝았기 때문입니다. 30분 전에 해 줬던 말, 아이가 못 지켰습니다. 새날이 밝은 겁니다. 또 세수하듯이 또 양치하듯이 새날이 밝은 겁니다. 아이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그냥 또 말해 주세요. 육아는 상황 상황마다 새날이 밝은 거라고 생각해야 마음이 좀 낫습니다. 아이가 또 말을 안들으면 '아, 또 새날이 밝았구나' 생각하세요. 새날이 너무너무 자주 오더라도 눈 한번 질끈 감고, 심호흡 한번 크게 하고 '새날이 밝았구나' 생각하세요.
형제 중에 유난히 말 안듣는 아이가 있어요. 솔직히 부모는 늘 폭탄덩어리인 아이에게 더 조심스러워지지요. 그렇지 않은 자식은 부모의 이런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자기는 말도 잘 듣고 규칙도 잘 지키는데, 부모는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부모와 자신을 힘들게 하는 형제의 편만 드는 것 같습니다. 아이는 아이라서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요. 부모에 대한 불만이 생기고, 형제에 대한 미움이 생깁니다. 부모가 불쌍하면서도 '도대체 착한 나한테는 왜 이럴까' 하는 마음에 공정하지 못하다고 여기는 약가감정이 생겨 괴롭고 혼란스럽기도 해요. 또 하나의 문제는 말 잘 듣는 아이는 부모한테 다리를 못 뻗습니다. '나라도 부모를 덜 힘들게 해야지'라는 생각에 본인도 힘들 때가 있고 불만이 있어도 부모에게 말을 못 합니다. 이렇게 되면 굉장이 많은 문제가 생기지요.
이 때문에 말을 잘 듣는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형제의 상태를 조금은 정확하게 설명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저 "동생이니까", "너는 착하니까", "너는 어릴 때 더 했어"라면서 이해를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동생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분명 문제야. 고쳐야 해. 그런데 전문가에게 상의했더니 이 나이에는 조금 더 기다려 보라고 하네. 그래서 그렇게 하고 있는 거야. 엄마가 이렇게 하는 것은 동생을 감싸거나 봐주는 것이 아니니까 네가 조금만 이해해 줘."라고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을 잘 듣는 형제에게 꼭 해줘야 하는 말이 있어요. "동생을 보살피는 건 부모의 몫이야. 동생 때문에 네가 힘들 때는 꼭 말해 줘. 너도 혹시 엄마, 아빠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 얘기해야 하는 거야. 엄마가 힘들까 봐 얘기 안 하면 안 돼. 네가 얘기해 주는 것이 엄마는 더 기쁘고 그게 엄마를 돕는 일이야"라고 일러 주세요.
내 아이는요, 나이에 맞는 아이의 자리에 있게 해야 합니다. 아이가 잘 못하면 "괜찮아, 아직 어리니까 천천히 배워 나가면 돼"라고 말해 주세요. 이 말이 잘 나오지 않으면, 외워서라도 해 주어야 합니다.
친구 때문에 상처를 받고 저를 찾는 아이들이 많아요. 친구의 모진 말에 상처를 받은 아이에게는 이렇게 묻습니다. "친구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잖아. 그 친구가 한 말이 옳은 말인지 잘 생각해 봐. 아닌 것 같으면 그 말에 영향을 받을 필요가 없는 거야. 물론 기분 나쁘지. 그러나 이 세상에는 옳지 않은 말을 하는 사람이 참 많거든. 그때마다 이렇게까지 아파할 필요가 없어. 네가 생각했을 때 뭐가 옳은 방향인 것 같아?"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 "그렇게 하도록 해. 네 생각을 한번 점검해 보고 그쪽으로 가면 되는 거야."라고 해 줘요.
아이가 잘 맞지 않는 친구로 인해 괴로워할 때, "그 친구도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일 거야" 또는 "걔가 잘 몰라서 그래, 조금만 더 지나면 네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그 아이도 알게 될 거야."라고 위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할 때가 많아요. "여러 사람이 있는 집단에는 좋지 않은 사람도 있어. 그런 사람이 많은 건 아니지만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해.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너는 괜찮은 사람이지. 집안 안에서 너랑 안 맞고 좋지 않은 사람도 있을 첸데 그런 사람의 기준에 너무 좌우되지 마."
우리는 살면서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납니다. '내'가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어요. 그런 사람을 만나서 어떤 일을 당해도 '나'는 여전히 좋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나'를 좋아하지는 않아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의 마음은 다 다르기 때문이에요. 그냥 다른 거예요. 옳고 그른 것은 생각하지 마세요. 그 사람은 그냥 그런 사람입니다. 업무 관계로 만난 사람은 딱 업무까지만 하세요.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하는 사람은 그 어쩔 수 없이 만나는 만큼만 하세요. 그렇지 않은 관계는 정리하세요. '내'가 그렇게까지 애를 썻는데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하면 그 관계는 정리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럴 때가 있어요. 매일매일 잘해 오던 일인데, 문득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계속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라는 생각이 들 때 말이에요. 그때 그걸 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그렇게 했더라면 하는 생각에 후회합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 억울함과 기대는 누구에게나 있어요. 하지만 아마 놓쳤다고 생각하는 그 길로 갔어도 분명히 후회는 남을 겁니다.
가지 않은 길은 그리워하지 마세요. 잠시 스치듯 상상해 볼 수는 있지만,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길이 최선일 가능성이 큽니다. 선택의 순간, '내' 세포 하나하나가 최선이라고 판단해서 선택한 길이기 때문이지요. 상황에 의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할 수 도 있어요. 하지만 결국 인생은 대부분 자신의 선택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내 안에 나도 모르게 그려 놓은 '행복의 그림'에 의해서 결정되었을 거예요.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에서 불현듯 허무감이 들 때는 자신을 들여다보세요. 선택의 순간마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내' 행복의 그림은 무엇인가요? '나는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에 대한 나만의 기준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세요. 선택의 순간이 오면, 거기에 맞춰 더 상위의 가치에 우선순위를 놓고 서열을 정해야 합니다. 뭐든 자신이 최상의 가치로 두는 것에 따라 살면 돼요. 그게 옳아요.
어느 쪽이든 결정하고 나서는 '나 이래도 될까'라고 고민하지 마세요. 누구도 인생에서 두 마리 토끼는 못 잡습니다. 동시에 두 길을 갈 수는 없습니다. 가치 기준은 아주 이상하고 부적절하지만 않다면 괜찮아요. 어느 누구도 당신이 세운 가치 기준에 대해 비난할 자격이 없습니다. 선택 후에는 뭔가 잘못됐다고 후회하고 죄책감을 갖지 마세요. 그것이 그 순간에는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방향이었을 겁니다. 스스로의 선택을 믿으세요.
매일 잠들기 전, 나를 용서하세요
아이는 하루 종일 정말 징글징글하게 말을 듣지 않았어요. 저녁이 되자 지쳐 버린 엄마는 아이에게 소리 지르면 안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몇 번이고 좋은 말로 가르쳐줘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결국 아이에게 무섭게 화를 내며 자녀교육서에서 하지 말라는 말들을 쏟아내고 말았습니다. 울다 지쳐 잠든 아이를 보니, 엄마는 너무 미안했어요. 엄마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 정도밖에 안 될까 하는 마음에 자신이 한심해졌습니다. 그 엄마가 저를 찾아왔어요. 이런 날이 하루도 이틀도 아니고 일주일에 절반이 넘는다고 했지요. 제가 그 엄마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매일 잠들 전, 하루 종일 '나'를 힘들게 한 아이를 용서하세요. 그리고 그 아이를 잘 다뤄주지 못한 '나'를 용서하세요."
너는 당신도 매일 밤 자기 전, 하루 일을 돌아보며 자신을 반성하기보다 용서했으면 좋겠습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용서보다는 반성을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라고 묻는다면, "원래 더 나은 사람이라는 것은 없어요"라고 대답할게요. 세상에 나쁜 사람은 있찌만 못난 사람은 없거든요. 그래서 더 나은 사람도 없습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좋은 자세지만,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일부 반성하는 것은 좋아요. 하지만 자신을 너무 다그치지 마세요. 우리는 그저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들 때문에 자신을 지나치게 혹독하게 대할 때가 많습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보다 '나를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 필요해요. 왜냐면 '나'를 알아야 '나'를 다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자신을 계속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자신에 대해서 많이 알면 알수록 자신ㅇ르 더 잘 다루게 되겠지요. 자신을 잘 다루게 되면 마음이 쉽게 요동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실망할 일이 조금은 덜 생깁니다.
제가 만났던 소리 지르는 엄마도 그렇습니다.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면 안 된다'를 무조건 지키려고 하는 것 보다 '아, 내가 이럴 때 이런 마음으로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는구나'를 깨닫는 것이 중요해요. 그래야 아이에게 소리 지르는 행동을 줄일 수 있어요. 그렇게 '나'를 알려면 마음의 안정감을 찾아야 합니다. 마음의 안정감을 찾으려면 '나'를 미워하고 혼내서는 안 돼요. '나'를 인정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오늘 당신에게 심한 말을 했습니다. 화가 머리 끝까지났찌요. 그런데 그 어떤 사람은 내버려 두세요. 한동안 그 사람을 용서하기가 힘듭니다. 그때 분노감을 가졌단 당신을 당신이 용서하세요. 상사가 무리한 요구를 했습니다. 뭐라고 따지고 싶었어요. 하지만 아무 말도 못했지요. 잔뜩 위축되어 있던 당신을 용서하세요. 어떤 일에 쉽게 좌절하고 포기했던 당신을 용서하세요. 목숨 바쳐 사랑하는 자식이지만 순간 미워서 '으이구!'했던 당신을 용서하세요. 뭔가 잘못하고도 뻔뻔하게 '뭐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했던 당신을 용서하세요. 갑자기 끼어드는 차 때문에 감정이 격해졌던 당신을 용서하세요. '오늘 이런 저런 일이 있었지. 오늘은 그냥 나를 용서하자' 하세요. 그리고 자신을 진심으로 용서하려고 노력하세요. 이것은 궁극적으로 당신이 마음의 안정감을 찾는 길이에요.
세상을 살다 보면 사소한 일들과 의외의 사람들에게서 생각보다 큰 고통을 받기도 합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감정이 날카로워져서 오히려 자기 자신을 할퀴게 될 때가 많아요. 용서는 그럴 때 스스로 정서적 안정감을 찾고 자신을 바라보는 과정입니다.
잘못해 놓고 "다 괜찮다, 다 괜찮아"하라는 것이 아니에요. 자신의 수많은 나약함과 치졸함, 별것 아닌데 화냈던 마음, 남을 미워했던 마음 등을 돌아보면서, 그 마음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런 마음에도 불구하고 안정감을 갖도록 자신을 진정시키라는 겁니다. 그런 마음들 때문에 우리 마음 속 집의 기둥이 흔들리지 않게 하라는 거예요. 그것이 당신이 당신 자신을 용서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내일을 잘 살아가려면 오늘이 끝나기 전 '나'를 용서하세요. '내' 마음의 불씨를 끄는 것이 용서입니다. 오늘 생겨난 불씨는 오늘 그냥 꺼 버리세요. 그 작은 불씨를 끄지 않으면, 불씨는 어느 틈에 불길이 되어 당신 마음의 집을 다 태워 버릴지도 모릅니다.
개인적으로 위로받고, 마음에 닿고, 한번 더 돌아보게 되는, 나중에 다시 보고 싶은 글들을 적어봤더니 생각보다 길어졌네요..ㅎ
큰 기대 없이 읽었다가 위로 받고, 또 표시해두었던 내용을 블로그에 정리하며 다시 적으면서 한번 더 생각해보고 위로 받았던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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